이승만 정부가 4.19 혁명으로 인해 물러나고 국민들의 투표로 새 정부가 수립된 지 9개월 즈음 지난 1961년 5월 16일, 3천 명이 넘는 군인들이 무장한 채 탱크를 앞세워 서울시내로 몰려와 서울의 중요시설을 모두 점령한 뒤 새 정부를 무너뜨리고 힘으로 권력을 차지했다. 이때 이 모든 일을 지휘한 군인이 박정희였다. 국민들이 피 흘려 세운 정부를 군대를 앞세워 힘으로 짓밟아 박정희는 권력을 잡았는데 이 사건을 5.16 군사 정변이라 한다.
이후 1963년 선거에서 박정희는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나라 경제의 발전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요구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의 인권은 경시되고 그들의 고혈로 나라는 발전되고 공장과 도로는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자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박정희는 국민들의 불만을 경청하고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로 불만을 힘으로 누를 생각만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유신헌법이다. 국민들이 불만을 잠재우면서 평생 대통령 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헌법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국회를 해산시키고 유신헌법을 제정한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강화해서 국회나 국민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국민이 직접 투표해서 대통령을 뽑는 국민의 권리 또한 뺏었으며 유신헌법이나 대통령에 반하는 사람들을 잡아넣기 위해서 대통령 마음대로 긴급조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였다. 이 유신헌법으로 인해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잃게 되었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서슬 퍼런 독재 치하에서도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국민들은 멈추지 않았다.
대학생들이 앞장섰고 종교인을 비롯해 지식인들이 함께 뒤를 따랐다. 1979년 경상남도에서 시위는 매우 거셌고 이승만을 잊은 박정희에게 경고를 하며 부산의 대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마산으로 시위는 번져나갔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벌어진 이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 수천 명의 국민이 한 마음으로 시위에 가담하였다. 이를 부마항쟁이라 부른다. 국민들의 저항은 나날이 거세져 가고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18년 동안이나 권력을 휘두르며 독재를 하던 박정희는 자신의 부하였던 김재규 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부하 조차도 등을 돌리게 만든 박정희의 오랜 독재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10.26 사태이다. 부마항쟁과 10.26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이미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은 차오르고 있었기에 언제든 무너질 정권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사상식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신의 난 / 김보당의 난 / 망이 망소이의 난 (0) | 2022.10.06 |
---|---|
1212사태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6.10 민주화 항쟁 (0) | 2022.10.06 |
3.15부정선거 / 4.19혁명 / 김주열 열사 (0) | 2022.10.05 |
엠바고(embargo) (0) | 2022.10.05 |
위증죄 / 모해위증죄 (1) | 2022.10.04 |
댓글